광물 속에 갇힌 물 분자 연구
광물 속에 갇힌 물 분자 연구
― 암석이 숨기고 있는 ‘지구의 비밀 저수지’
지구에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바다, 강, 호수 외에도 물이 존재하는 ‘숨겨진 장소’가 있습니다. 그것은 바로 지하 깊은 곳, 암석 속입니다. 단단하고 건조하게만 느껴지는 광물들이 사실은 물 분자를 가두고 있는 저장고 역할을 한다는 사실, 알고 계셨나요?
최근 지구과학 연구에서는 광물 속 미세한 결정구조에 갇혀 있는 물 분자를 분석함으로써,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하수계의 규모와 지구 내부 물 순환의 비밀을 밝혀내고 있습니다. 이른바 ‘지구의 비밀 저수지’를 추적하는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.
암석 속 물이란 무엇인가?
일반적으로 암석은 건조하고 단단한 고체 덩어리로 여겨집니다. 하지만 실제로는 그 내부의 결정격자나 미세한 간극, 불완전 결합 부분에 물 분자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. 이 물은 자유롭게 흐르지 않기 때문에 ‘유체’가 아니라 ‘결합수(bound water)’ 상태로 존재합니다.
예를 들어, 고압 광물인 리그우다이트(ringwoodite)는 구조적으로 수산기(OH⁻)를 포함할 수 있으며, 이 OH⁻는 물(H₂O)의 형태로 간주됩니다. 이러한 구조수는 고온·고압 환경에서도 안정하게 존재하며, 지구 내부의 물 보관소 역할을 수행합니다.
발견의 계기 – 다이아몬드 속의 물
2014년, 과학자들은 브라질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속에 포함된 리그우다이트에서 물 분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습니다. 이 다이아몬드는 약 500~700km 깊이에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, 그 내부의 광물 구조 분석을 통해 고체 상태의 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.
이 발견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. 이후에도 여러 대륙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보고되었으며, 이를 통해 지구 맨틀 전이대(transition zone, 약 410~660km 깊이)가 거대한 수분 저장소일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.
맨틀 속 거대한 물 저장고
지구의 맨틀은 지각 아래부터 약 2,900km 깊이까지 이르는 막대한 영역입니다. 이 중 ‘맨틀 전이대’는 결정 구조가 변하는 구간으로, 고압 안정 광물들이 존재합니다. 이곳에 포함된 물은 기존에 생각했던 지구 전체 수권의 몇 배에 달할 수 있다고 추정됩니다.
한 연구에 따르면, 맨틀 전이대에 포함된 구조수만으로도 지구 표면의 바닷물 양을 2~3배 더 저장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. 이는 지구 내부에도 ‘숨겨진 물의 세계’가 존재하며, 이 물이 장기적인 지구 시스템 변화에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.
물은 어떻게 암석 속으로 들어갔을까?
암석 속에 물이 존재하려면, 그 물이 지구 내부로 유입되었어야 합니다. 이 과정은 주로 판의 섭입(subduction)을 통해 일어납니다. 해양판이 대륙 아래로 들어갈 때, 그 위에 쌓인 해양 퇴적물과 공극수, 해저 화산암 등이 함께 끌려 들어가며 수분을 지구 내부로 공급합니다.
이 물은 단순히 증발되거나 사라지지 않고, 고온·고압 환경에서 광물과 반응하여 그 구조 내에 포획됩니다. 즉, 물은 섭입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고, 지각변동이나 화산 활동을 통해 다시 표면으로 돌아오는 지구 내부 물의 순환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.
암석 속 물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
암석 내 물은 단순한 저장고 그 이상입니다. 물은 암석의 물리적 특성을 바꾸고, 용융점을 낮추며, 마그마 생성과 화산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. 예를 들어, 물이 포함된 암석은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녹아 마그마로 변할 수 있으며, 이는 지각 내 화산 활동의 원동력이 됩니다.
또한, 물은 지각의 연성(ductility)을 증가시켜 지진 발생 깊이와 규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. 맨틀 내 물 함량은 지각판의 움직임, 조산대 형성, 변성 작용 등의 다양한 지질학적 현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합니다.
연구 방법 – 물을 보는 눈
이러한 미량의 물을 어떻게 검출할 수 있을까요? 과학자들은 적외선 분광법(IR spectroscopy), 라만 분광 분석(Raman spectroscopy), 중성자 산란(neutron scattering) 등의 기술을 이용해 광물 내 수산기나 결합수를 탐지합니다.
또한, 투과전자현미경(TEM)이나 X선 회절(XRD) 분석을 통해 광물의 결정 구조를 분석하고, 그 안에 존재하는 물질의 화학 조성을 정밀하게 파악합니다. 이러한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수십 ppm 수준의 수분도 정량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.
지구 시스템을 이해하는 열쇠
암석 속의 물 연구는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. 이 연구는 지구 시스템의 장기적 평형, 기후 변화, 해수면 변동, 지진과 화산 발생의 원인 등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.
또한, 외계 행성 탐사에서도 물의 존재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유사한 연구가 활용됩니다. 타 행성의 광물 구성과 구조를 통해, 그 내부에 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추론하는 것입니다. 지구에서의 연구는 곧 우주의 생명 가능성을 탐색하는 토대가 됩니다.
결론 – 암석이 품은 물의 이야기
우리는 물을 바다나 강에서만 찾습니다. 그러나 지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조용한 장소에 물을 숨기고 있습니다. 광물 속에 갇힌 물 분자들은 지구의 숨겨진 역사와 역학을 말해주는 증인입니다.
앞으로도 암석 속 물에 대한 연구는 지구 내부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. 그것은 단순한 수분이 아니라, 지구 생명의 순환과 변화, 그리고 생존의 조건을 담고 있는 귀중한 정보의 저장고입니다.